권정현
 
전다화의 <고스트 인 더 머신>2015~16년에 텀블러와 트위터에 @cursedimages라는 계정으로 올라온 이미지들을 옮긴 회화 연작이다. ‘저주 받은 이미지(cursed image)’라 불리는 이 이미지들은 대략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에 일명 똑딱이라 불리는 디지털 컴팩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인데, 내용이나 품질이 좋지 않아서 기이하고 불안한 감정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의도를 알 수 없는 황당하고 이상한 상황을 담고 있거나, 구도나 초점 등을 신경 쓰지 않아 어딘가 어색하거나, 태생적으로 저화질인 이미지가 웹을 떠돌아 낡은 화질을 가지고 있다. 기이하고 어색한 느낌의 이 사진들은 일종의 이 되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는 물리적 실체를 갖지 않은 채 인터넷을 유령처럼 떠돈다. 업로드와 다운로드, 공유의 과정을 거치며 이미지의 데이터는 조금씩 소실된다. 애초부터 그리 고화질로 촬영되지 않은 저주 받은 이미지는 인터넷 위를 떠돌며 더욱 낡아간다. 전다화는 그 이미지를 열화의 과정에서 건져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물질의 표면에 스며들도록 한다. 수채화용 특수 코팅이 입혀진 면천은 물감을 흡수하지만 한 번 건조된 후에는 표면을 형성한다. 물감을 얇게 겹겹이 쌓아,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 그 겹침이 보이게 그리는 방식은 포토샵에서 여러 개의 레이어를 하나로 합치는 레이어 병합(merge layers)’과 유사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디지털 이미지의 데이터는 작가를 매개 삼아 해체되고 다시 층을 쌓아 최종적인 하나의 면을 가진 물리적 실체, 즉 물질적인 으로 전환된다. 몸이 없는 유령처럼 인터넷을 떠돌던 이미지는 전다화의 손에서 더 크고 선명해진다. 그는 낡아가는 사진을 더 오래 보고,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듯이 크고 선명하게 그린다.
 
전다화는 왜 이 이미지들에 물리적 실체를 부여하는가. 그것도 더 크고 더 선명하게. 전다화는 이 이미지들을 처음 보고는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고화질 카메라와 언제든지 접속 가능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장착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이런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이제 사진은 언제나 유통되는 것이고,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시대에, 우리는 항상 어떻게 보여질지 의식하며 찍고 찍힌다. 인스타그램으로 보여주는 사진은, 그것이 셀카가 아닐지라도, 그 자체로 계정 주인의 취향과 의식,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사체, 각도, 조명 모든 것 하나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전다화는 오늘날의 시점에서 저주 받은 이미지가 일종의 문화사적 유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시대를 표상한다고 본다. 더 이상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시대에, 전다화는 그 생경한 감각을 포착하고 물질화 한다. 마치 겪어본 적 없는 시절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그 이미지를 물질화하여 간직하려 한다.
 
한편으로, 저주 받은 이미지의 기이함은 그 내용과 형식의 조잡함에 기인한다. 의도를 알 수 없는 황당한 상황, 어색한 구도와 초점, 낡은 화질 같은 조잡한 내용과 형식의 결합이 기이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기이한 감각은 저예산 ‘B급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정서를 닮아있다. 서사의 전개에 개연성이 없어 황당하거나 예산이 없어 조잡한 특수효과를 부려 놓고 관객에게 속으라고 강요하는, 그런 웃긴 영화를 닮았다. 전다화가 이런 이미지를 선택하여 물질화한 것은 징후적이다. 이는 이전에 선보였던 작업 <크리스마스 인스턴트 믹스>와 비의도적으로 연결된다. <크리스마스 인스턴트 믹스>는 구글 검색을 통해 수집한 1950년대 빈티지 포장지 이미지를 손으로 따라 그려 복제하고 선물 상자를 포장한 작업이다. 산타와 눈사람이 그려진 크리스마스 선물용 빈티지 포장지는 대중적 취향에 부합하는 키치한 상품지만, 시간의 격차와 함께 모종의 매력을 지니게 된 이미지다. 저주 받은 이미지의 기이함과 대량생산된 선물 포장지의 키치함은 사실상 동류다. 전다화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것이 아니라 조잡하고 대중적인 것에서 무언가를 찾아낸다.
 
전다화가 하려는 미술은 그런 것이 아닐까? 그의 작업이 기반하는 것들은 미술이든 문학이든 영화든 고급스러운 어떤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미지, 앞뒤가 맞지 않는 광고 문구, 못생겨도 사랑스러운 대중적 이미지 같은 것에 애착을 갖고 거기에서 새로운 미적인 것을 발견한다. 여기에는 팝아트처럼 미술의 운명에 대한 심오한 책임감도 소비사회를 비평하겠다는 메타적 시선도 없다. 그저 오늘날 하이엔드 패션이 길거리 패션을 차용해 재맥락화하듯이, 전다화는 그런 것들에서 새로운 감각과 유머, 아름다움과 개성을 발견하고 미술의 맥락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동시대적이고 세대특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저주 받은 이미지가 그 시대에 대한 유물처럼 남았듯이, 전다화의 이미지는 자신이 애착하는 것들로서 다시 동시대적 이미지를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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